4개월 된 아기의 18년 뒤 미래

4개월 된 아기의 18년 뒤 미래

 

주로 유전에서 기인하는 다른 발달 결과들을 생후 초기의 행동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아이오와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여름방학 동안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대학원에 가서 아동발달을 전공할 예정이었던 나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여름을 보내는 것이 향후 공부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는 부모님이 사시는 위스콘신 주에서 30 여 킬로미터 떨어진 일리노이 주의 캠프장에 직장을 구했다. 숲 속에 60만 제곱미터 규모로 자리 잡은 캠프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리더십과 생활능력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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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만난 특이한 아이 하나가 내게 유달리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처음 윌리엄을 만났을 때, 나는 악수를 청하며 내 소개를 한 다음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아이들과 악수하기를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낯선 어른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갓 유치원을 졸업한 윌리엄은 움찔하며 눈에 띄게 뒷걸음질을 쳤다.

낯선 어른과 마주쳤을 경우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기 다른 법이라 처음에 나는 윌리엄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아이가 일관되게 그런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여름캠프 내내 수많은 행사에서 윌리엄은 극도로 소심하고 과묵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새로운 활동을 하라고 하는 경우에 그랬다. 나는 윌리엄이 속한 집단의 아이들에게 ‘플린치(Flinch)’라는 게임을 알려주었다. 플린치는 간단한 게임으로, 우선 아이들이 한 사람(내가 먼저 시작했다)을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선다. 가운데 있는 사람이 바깥의 사람들에게 공을 던지면 사람들은 공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가운데 있는 사람이 실제 공을 던지지 않고 던지는 시늉만 하는 경우에는 공을 잡으려고 공을 던져서는 안된다(시늉만 보고 공을 받으려고 몸을 움찔하는 동작, 즉 ‘플린칭(flinchig)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게임 이름도 ‘플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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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어르고 달랜 끝에 윌리엄도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서너 명의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공을 던졌고 아이들은 매번 공을 잡았다. 그 다음에는 서너 명에게 공을 던지는 시늉만 했다. 아이들 넷 중에 세 명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나머지는 유혹을 이기고 잘 버텼다. 그런데 내가 가짜로 윌리엄에게 공을 던지는 시늉을 하자 윌리엄은 울면서 바닥에 넘어졌다. 그날은 윌리엄에게 길고 힘든 하루가 되었다.

위리엄은 자폐증을 앓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내가 관찰한 아이들 중에 가장 억눌리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에 속했다. 새로운 게임, 낯선 활동 등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윌리엄은 극도로 경계를 하면서 다가왔다. 그나마 다가오면 다행이었고 아예 접근을 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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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낯선 활동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이처럼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 윌리엄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원인일까, 아니면 부모의 육아 방식이 원인일까? 그것도 아니면 양자의 결합일까? 나는 윌리엄이 유아기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윌리엄은 만성적으로 울고 짜증내는 아이였을까, 아니면 대부분 아이들처럼 생후 두 달이 지나면서 울음이 줄어드는 그런 아이였을까? 마지막으로 윌리엄 앞에 펼쳐진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도 궁금했다. 아이는 성취감을 느끼면서 행복하게 자랄까, 아니면 불안으로 점철된 실존을 영위할 그런 운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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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끝나자 나는 대학원으로 향했다. 그곳 실험실에서 수많은 유아들을 검사했고, 곧 유아들의 행동 방식에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심장박동 수를 재려고 유아에게 장비를 갖다 대면, 어떤 아이들은 발길질을 하고 상체를 구부리면서 목청이 터져라 울어댔다. 반면 다른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순하고 협조적이고 조용했다.

대학원 첫해에 나는 하버드 대학교 제롬 케이건(Jerome Kagen) 교수의 연구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케이건 교수는 오랜 연구 생활 중의 많은 시간을 윌리엄처럼 몹시 예민한 아이들, 내가 실험실에서 만났던 과민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을 연구하면서 보냈다. 케이건이 중점을 두고 연구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는 고도의 행동억제(behaviroral inhibition) 경향을 보이는 아이들, 즉 새로운 상황, 사람, 사물 등에 직면하면 경계심, 조심성, 불안 등을 보이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연구자들은 자폐증과 마찬가지로 이런 행동 성향도 주로 유전적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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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건의 선구적 연구는 어린 시절에 나타나는 행동억제 성향이 사람에 따라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케이건의 연구를 비롯한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서 나는 마침내 윌리엄에 대해 품었던 많은 의문에 답을 얻었다.

케이건이 진행한 가장 유명한 연구 중의 하나는 보스턴 지역에서 열달을 채우고 정상적으로 태어난 백인 영아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케이건과 그의 팀은 이들 중의 다수가 10대 중반 혹은 말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연구진이 당신과 16주 된 아기를 실험실로 초대했다고 상상해보라(실제로 그들은 500명의 유아와 부모를 불러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자의 요구에 따라 당신은 아기를 편안한 아기용 의자에 앉힌다. 아기용 의자 앞에는 아기를 정면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45분 동안 진행된 일련의 실험에서 실험자는 아기에게 다양하고 특이하고 새로운 자극들을 제공한다. 녹음된 문장이나 의미 없는 소리들을 아기 귀에 갖다 대기도 하고, 색색의 물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빌을 아기 얼굴 앞에서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톡 쏘는 냄새가 나는 면봉을 아기 콧구멍 밑에 가져가기도 한다. 케이건과 동료들은 울거나 웃는 등의 감정 표현은 물론 등을 굽히거나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 같은 운동 행위에도 관심을 가졌다. 기본적으로 케이건은 영아들의 수많은 텔이 드러나서 체계적인 검토가 가능한 상황이 되도록 실험을 설계하고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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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건에 따르면 영아 다섯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자극이 제공되면 순간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면서 팔다리를 뻗고 사지를 격렬하게 움직이고 때로는 상체를 뒤로 젖혔다. 나아가 (·······) 이런 영아들은 불안하게 칭얼대거나 울었다.” 케이건은 이런 영아들을 ‘고반응아'(high-reactives)라고 불렀다. 반면에 다섯 명 가운데 두 명 꼴로 대단히 침착한 반응을 보이는 영아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자극을 주어도 울거나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케이건은 이런 영아들을 ‘저반응아'(low-reactives)라고 불렀다. 나머지는 행동 면에서 이들 두 집단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했다.

케이건은 당시 실험에 참가한 영아들 중의 다수를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에 다시 실험실로 불러 비슷한 실험을 수행했다. 행동억제를 연구하는 다른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케이건도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행동 및 생리 분석에서 놀라운 일관성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간단한 실험과정에서 보여준 4개월 된 아기의 행동이 유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향후 발달 과정을 예측해준다. 말하자면 영아기의 행동을 보고 어떤 아이가 윌리엄 같은 아이로 성장할지 예측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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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노스의 예언》(Galen’s Prophecy)이라는 저서에서 케이건은 로라라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라는 고반응군에 속한 아기였는데, 커서는 병적일 만큼 내성적인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 로라의 부모는 그녀가 생후 4개월이던 무렵 케이건의 실험실로 데려왔고, 그녀는 실험에 참가한 여느 아이들처럼 45분간 일련의 테스트를 받았다.

처음부터 로라는 몸부림을 치고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실험자가 정면에 모빌을 걸어놓자 로라는 등을 젖히고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아기가 너무 힘들어해서 테스트를 중단해야 할 정도였다. 로라는 생후 9개월이 되어 케이건의 실험실을 다시 방문했다. 그때도 엄마가 장난감 공룡을 꺼내자 울음을 떠뜨렸고 결국 공룡을 외면하고 의자 속에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14개월이 되어 실험실을 찾은 로라는 테스트 전 준비 시간에 부모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을 보인 아이는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 가운데 5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실험실을 방문할 때마다 울음의 정도가 심해지고 반응은 더욱 격렬해지는 것 같았다. 로라는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오거나 실험자들이 심박수 측정기나 혈압 측정기를 갖다 대기만 해도 울고 칭얼거렸다. 로라는 액체가 들어 있는 컵에 집어넣기도 거부하고, 실험자가 액체를 자기 입에 먹이는 것도 못하게 했다. 21개월이 되어서도 그런 경향은 지속되었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엄마한테 달려갔고, 나중에 어릿광대가 들어와도 울면서 ‘안 돼, 안 돼, 안 돼!”하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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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반응 영아들은 실험자와 잘 지낼 뿐만 아니라 실험 과제에도 즐겁게 접근하는 경향이 상당히 높았다. 케이건은 실험에 참가했던 안나라는 아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안나는 생후 4개월째에 실험실을 찾았지만 로라와는 달리 격한 움직임이나 힘들어하는 기색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장아장 걸음 무렵이나 영아 단계를 넘어 유아가 되어서도 안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아나는 서슴없이 액체가 들어 있는 컵에 손을 집어넣었고, 실험자들이 심박수 측정기나 혈압 측정기를 몸에 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낯선 사람, 어릿광대, 장난감 등에도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고반응아와 저반응아를 구별 짓는 행동 성향은 청소년기에도 계속되었다. 실험자들이 열다섯 살 청소년이 된 그들을 면담했을 때도 고반응 아이들은 좀처럼 웃지 않고 긴장하는 반면, 저반응아들은 보통 잘 웃고 느긋한 모습이었다. 영아 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케이건의 연구팀은 이들 청소년이 얼마나 ‘쾌활한지’ 혹은 ‘음울한지’도 평가했다. 고반응 영아였던 청소년들은 자신을 생각이 너무 많은 심각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은 지금보다 여유로운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저반응아들과는 달리 자기를 태평하고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고반응아들은 저반응아에 비해 낯선 환경에 접하면 심각한 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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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건은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 진단을 받았던 열다섯 살 소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생후 4개월째에 케이건의 실험실에 왔을 무렵, 아이는 다른 고반응아들과 마찬가지로 테스트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유아기에도 아이는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오거나 실험자가 기구를 자기 몸에 대려고 하면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케이건의 설명에 따르면 이후에도 아이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공황 상태’가 되었고, 자기 침실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소년은 불안 때문에 학교를 수시로 결석했다. 케이건은 “소년의 장기적인 기록을 보면, 영아기의 고반응 기질이 현재의 정서와 성격에 상당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라. 45분 동안 진행된 간단한 실험에서 영아가 보여준 텔을 근거로 그로부터 18년 뒤의 성격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출처 : 스냅 SNAP 매튜 헤르텐슈타인 지음 강 혜정 옮김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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