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 정 호 승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 정 호 승

사람마다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 점을 외형적인 것이든 내면적인 것이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런 부분은 남이 잘 볼 수 없고 알 수 없도록 감추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자신까지도 그런 부분을 싫어하고 창피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치 자기의 아름다움을 저해하는,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기 비하에까지 이릅니다.

‘나 같은 놈을 누가 좋아할 리 있나. 좋아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뭐, 잘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이런 생각이야말로 자기 비하의 극치입니다. 자기 비하는 인간의 영혼을 썩게 하거나 파괴시켜버리는 악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인간을 절망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악마는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고 단죄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못생기고 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인간입니다. 약한 부분이 한 군데도 없는 육체와 영혼을 지닌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그런 인간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그려질 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좋은 것만으로 형성돼 있다면 인간의 인간다움과 아름다움은 상실되고 맙니다. 이런저런 약한 부분들이 모여 인간이라는 건강한 전체를 이룹니다.

따라서 내게 비록 약한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내가 먼저 그 부분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의 약점을 미워하고 내팽개쳐버리면 누가 돌볼 수 있겠습니까? 나의 약한 부분을 마냥 숨기려고만 들면 열등의식이 형성되지만,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드러내 놓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오리걸음’을 걷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선천적으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두 발이 지나치게 양쪽으로 벌어집니다. 그래서 보통사람 보다 서너 배는 더 느리게 걷습니다. 실은 걷는다기보다는 몸 전체가 오리처럼 뒤뚱거린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저는 그 소년을 가끔 만납니다. 만날 때마다 소년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해서 유심히 살펴봅니다. 소년은 표정이 얼마나 밝은지 모릅니다. 비록 오리처럼 몸을 뒤뚱거리며 느리게 걸어가지만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당당합니다. 자신의 그런 모습을 감추려 들지 않는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만일 소년이 자신의 그런 부분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려 든다면 단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얼 짱’과 ‘몸 짱’을 요구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외모 가꾸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물론 추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게 더 좋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아름다움이 과연 외모에만 있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밑 화장을 하고 속눈썹까지 붙이는 젊은 여성을 보고 아름다움보다는 추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외모의 아름다움은 외형이 만드는 게 아니라 결국 내면이 만듭니다. 내면이 겸손하고 남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표정은 내면의 거울입니다. 정신의 깊이에서 표정이 우러나옵니다.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기준이 편견일 수 있고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저는 표정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아무리 미인이라 할지라도 정신의 부족함과 설익음이 반영된 표정을 지닌 사람은 미인이 아닙니다.

밤하늘에 아름답게 떠 있는 달은 실은 분화구가 있는 황야나 사막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달도 태양빛을 받으면 그토록 아름답습니다. 누가 저 보름달을 울퉁불퉁한 돌덩이나 흙덩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은 인간을 만들 때 태양빛을 받아 보름달처럼 빛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하나씩 다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물을 어디다 둔 줄 잘 모릅니다. 신이 선물한 나의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해서 내 인생이 먼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인생이 먼저 존재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인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입니다. 남이 아닙니다. 주인인 내가 내 인생의 약한 부분을 쓰다듬고 껴안아주어야 합니다. 내게 약한 부분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것이 없어지면 또 다른 약점이 나타나 나를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부분이 없어지기를 바라기 전에 그 부분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이 나중에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이 욀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부분 때문에 내게 도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가장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는 고목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가장 먼저 서까랫감으로 쓰이고, 그 다음 못생긴 나무가 기둥감으로 쓰이고, 가장 못생긴 나무는 잘리더라도 대들보로 쓰입니다. 나의 가장 못생긴 부분이 끝까지 남아서 나를 지키는 대들보가 될 수 있습니다. 잘난 부분은 늘 잘났다고 오만해짐으로써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합니다. 저의 큰 약점을 작게 생각하고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살펴봅니다. 어쩌다가 자기 비하의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자기애의 마음으로 곧 전환시킵니다. 자기를 스스로 보살피는 마음, 자기를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 자기를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마음이 있을 때 남을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저는 제 자신에게 늘 그렇게 말해왔습니다.

*정호승 님은 1950년 대구에서 출생, 1973년에 대한일보의 신춘문예에 시로, 1982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는 단편으로 등단. 시집으로는 ‘서울의 예수’,’새벽편지’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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